억만장자의 겸손함에 대하여 – 소프트뱅크와 손정의

나에게는 서울대 창업동아리 시절에 만나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금융 업계 종사자 선배가 있다. 그 선배는 가끔 나에게 테크 산업 종사자로서 어떤 기술 기업에 대한 의견을 묻곤 하시는데, 2019년 말 우리의 대화 주제는 우버와 위워크 등의 문제로 큰 타격을 입은 소프트뱅크였다.

  • 선배의 질문 : 소프트뱅크 어떻게 될 것 같니? 투자해야 할까?
  • 나의 대답 : 네 저라면 투자합니다. 선배나 제가 한 10조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평생 써도 다 못 쓸 돈 가지고 있는데 남한테 가서 아쉬운 소리 하고 싶을까요? 그런데 손정의 사장님은 자기 일에 필요하니까, 자기보다 돈 더 많은 사람, 빌 살만 왕세자 찾아가서 투자 요청을 하셨다더라고요. 그 정도 돈 가지고 있어도 여전히 다음 목표가 있고, 그 목표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은 잘 안될 수가 없다고 봐요.

그렇다. 내가 언급한 일화는 비전 펀드 결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사우디의 실세로 꼽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부왕세자를 비롯한 500명의 대표단이 도착하자 소프트뱅크는 재빨리 면담 일정을 잡았다.

손 사장은 사우디 국부펀드(PIF) 수장인 야시르 알루마얀, 칼리드 팔리흐 사우디 석유장관, 마제드 빈 압둘라 알카사비 무역·투자장관을 줄줄이 만났으며 맨 마지막에는 빈 살만 알사우드 부왕세자를 직접 만나는 기회를 얻었다.

손 사장은 소프트뱅크가 사우디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알리바바, 슈퍼셀, 야후 재팬 등 성공적인 투자사례를 열거하며 사우디 마음 사로잡기 나섰다.

– 100조원 펀드 만든 손정의, 어떻게 석유왕국 사우디 마음 샀을까 (연합뉴스, 2016.10.19)

투자 유치 과정에서 갑을 관계는 명확하다. 투자를 요청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을’일수 밖에 없다. 가진 재산이 수십조 원 넘는 자산가가 다음 도전을 위해 을의 입장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장면이 쉽게 상상이 되는가?

손정의 사장님의 겸손함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창업을 하기 전에 일했던 곰앤컴퍼니(곰플레이어, 곰TV 등을 서비스하는 회사)의 임원 중 한분이 소프트뱅크 임원을 만나기 위해 일본 소프트뱅크 본사로 출장을 가셨을 때의 일이다. 예정된 미팅을 끝내고 나오는데, 소프트뱅크 임원 비서들이 일정표를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오늘은 손정의 사장님 다른 미팅이 있으셔서 인사 나누기 어려울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란다. 원래 손정의 사장님을 만날 예정은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손정의 사장님은 본사에 방문하는 분들은 예정에 없더라도 시간이 되면 짧게라도 만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으라고 요청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소프트뱅크 본사에 미팅을 올 정도면, 자기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낸 사람일 것이다. 이미 수십조 원을 가졌지만,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서 정보를 얻으려는 그 겸손함이 손정의라는 사람을 지금 그 자리에 있게 한 것이 아닐까?

나와 그 선배가 대화를 나눈 후 약 9개월이 지난 지금,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50% 이상 올랐다. 당시 문제를 일으켰던 투자사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했는데도 말이다. 냉정한 자본 시장에서 소프트뱅크는 왜 이렇게 평가되고 있을까? 위에서 언급된 이야기들에 그 답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 더 읽을거리 : 손정의 회장 소프트뱅크 월드 기조강연 (2019년 7월)

Masayoshi Son (孫正義) on July 11, 2008

조직의 실행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천억짜리 조언 – 당근마켓 김재현 대표님과의 대화

아래 글은 제가 지난 11월 당근마켓 김재현 대표님과의 만남에서 들은 조언을 갈무리한 것입니다. 제가 배운 것이 너무 많아 주변 창업자분께 이야기 드렸더니, 다들 전체 내용을 공유 받고 싶다고 하셔서, 김재현 대표님의 허락을 받고 공유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시고, 후배 창업가들을 위해 흔쾌히 공유를 허락해주신 김재현 대표님께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아울러 제 기억에 의존해 정리한 내용이라 김재현 대표님께서 의도하셨던 것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만남의 배경

로켓펀치의 실행 속도를 높이라는 조언을 계속 해주시고 계신 로켓펀치의 첫번째 투자자 이기하 대표님께서 자신이 지금까지 만나본 천개가 넘는 회사 중 가장 실행 속도가 빠른 회사라고 하시며, 만남을 주선

대화 정리

  • 조민희 (이하 조): 저희 팀의 상황을 먼저 말씀드리는게 좋겠다. 이기하 대표님은 저희가 굉장히 좋은 사업 아이템을 잡았다고 생각하시고, 그래서 두번의 구주 매각 기회가 있었음에도 팔지 않으셨다. 그런데 실행 속도가 느리니 속도가 가장 빠른 회사인 당근마켓을 만나보라고 하셨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저희 내부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제품이 너무 복잡해진 것이다. 개발팀 다 열심히 하는데 제품이 너무 커져서 빨리 만들고 싶어도 빨리 안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최근에 기능 몇개를 날리는 결정도 했다.
  • 김재현 (이하 김): 그런가? 제품을 단순하게 유지하는 거 참 중요하다.
  • 조: 당근마켓은 제품을 단순하게 잘 유지하는 것 같다. ‘지역 기반 거래 플랫폼’으로.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유지할 수 있는가?
  • 김: 일단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제품 기능을 넓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대부분의 기능 확장에 대해서 보수적으로 검토한다. 기획자에게 기능 추가하는 것 해보라고 하면 누구나 다 한다. 기능을 단순하고 쉽게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거다. 이런 생각을 모든 팀원들에게 공유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입사 교육을 한다. 팀 내 리더 포지션 3~4명이 1~2시간씩만 교육해도 그 사람은 10시간 정도의 교육을 듣는 거다. 나는 ‘우리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중고거래’가 아니라 ‘로컬 기반 거래 플랫폼’을 만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고, 이것을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초창기부터 모바일에만 집중했다.
  • 조: 그럼 웹은 안 만드는 것인가? 링크 공유를 했을 때 뜨는 페이지 같은 것도?
  • 김: ‘물품 상세 페이지’만 웹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그 페이지는 결국 앱 다운로드 받게 하려는 미끼다. 사람들이 앱을 점점 더 많이 쓰고, 웹을 점점 더 적게 쓰는데 굳이 줄어드는 플랫폼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 조: 특히 위치 기반 서비스니까 더 그랬겠다.
  • 김: 그렇다. 로켓펀치는 앱 안 만드시나?
  • 조: 이제 만들고 있다. 2016~2017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아직 채용 중심으로 서비스를 쓰고 있었고, 앱을 내기에는 준비가 안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작년부터 프로필 페이지 조회수가 3배 이상 뛰는 등 비즈니스 프로필 서비스로 자리를 잡은 것 같고 앱을 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웹이 너무 방대해졌고, 웹에서 꼭 필요한 기능만 앱으로 옮겨오려고 한다.
  • 김: 그런가? 우리는 앱을 만들 때 처음부터 ‘체류 시간’을 중요하게 보았다. 습관처럼 켜는 앱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거래할 물건이 없어도 올라온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있도록 상품 피드를 구성했다. 다들 생각하기에 개인화가 안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상품 피드 개인화 되어 있다. 5개 중에 1개를 개인화 알고리즘으로 노출한다. 초창기부터 그렇게 만들었고, 알고리즘은 계속 개선하는 중이다.
  • 조: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만들었으니 ‘체류 시간이 1등인 이커머스 앱’이 되었나 보다. (참고자료 : 이커머스 방문자 1위 앱은 ‘쿠팡’…체류시간은 ‘당근마켓’ – 한국경제, 2019.01.18)
  • 김: 그럴 것이다. 로켓펀치에도 피드가 생겼던데… 우리랑 비슷한 목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없앤 기능은 무엇인가?
  • 조: 비즈니스 맵, 투자 기능 등이다. 전체 트래픽의 1%도 되지 않았다. 그걸 만들려고 수개월을 쏟았는데, 결국 내가 제품 로드맵을 잘못 그린 것이다.
  • 김: 그럴 것 같다. 나도 그런 기능 있는지 몰랐다.
  • 조: 당근마켓에서 데이터를 굉장히 잘 다룬다는 이야기를 당근마켓에 투자하신 캡스톤 파트너스에게 들었다.
  • 김: 그런가? (당근마켓의 관리자 페이지 겸 대시보드를 보여주며) 초창기부터 ‘지역 기반 거래’를 잘 만들기 위한 관리자 페이지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기능이 먼저 출시되고 나중에 관리자 페이지 기능을 추가한 적은 없다. 항상 기능과 함께 관리자 페이지와 통계 기능을 출시했다. 나는 항상 인터넷 비즈니스가 ‘애그리게이터(Aggregator)’라고 생각한다. 네이버가 그랬고, 다나와도 그렇고 내가 만들었던 쿠폰모아도 그랬다. 나는 그래서 당근마켓은 ‘지역 정보’를 모으는 애그리게이터로 키워 가기 위해 그것을 중심으로 여러 기능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 보여주신 것
      • 동 단위로 거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표시되는 대시보드 (잘 안되고 있는 곳은 붉은색)
      • 거래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표시되는 지역
      • 2주 이내 거래 완료 그래프
  • 조: 2주 이내 거래 완료 그래프가 있는 것을 보니, 2주 이내 거래 성사를 주요 지표로 보고 있는 것 같다?
  • 김: 그렇다. 초창기부터 이런 지표를 보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 조: 내가 보니 데이터 통계 도구와 서비스 관리 도구가 하나의 페이지에 통합되어 있는 것이 인상깊다. 우리도 그런데 보통 두 페이지가 분리되는데… 그나저나 이 페이지는 키바나로 만든 것인가?
  • 김: 별도 도구 없이 자체 개발했다. 두개의 페이지로 나눠 쓰다 보니 안 보게 되는 것 같더라. 그래서 CS, 데이터, 기타 서비스 관리를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의 페이지로 몰았다. 하드코어한 데이터 통계는 다른 도구를 쓰긴 하지만 일단 하나로 본다. 그게 기업 문화를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 조: 최근에 업무 환경 관련 개선에서 시도해서 좋은 결과를 본 것이 있는가?
  • 김: 아카이브가 필요한 내용을 에버노트에 쓰다가 노션으로 바꿨다. 아주 잘 한 것 같다. 노션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내가 했다. 회사 소개 사이트가 있었는데, 업데이트도 안되고 해서 그냥 노션에 써서 올리면 어떨까 싶어서 바꾸자고 했는데, 회사의 젊은 구성원들(90년대 생)이 더 창의적으로 쓰더라. 기대했던 것보다 효과를 더 본 것 같다.
  • 조: 노션 페이지를 보니 인원수가 30~40명인 것 같다. 우리도 꽤 적은 수로 큰 서비스 잘 돌리고 있다는 이야기 듣는데, 당근마켓은 정말 린(Lean)한 조직인 것 같다.
  • 김: 사실 2019년 초까지만 해도 인원이 채 20명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채용 원칙 중 ‘우리(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선발한다’는 것이 있다. 모든 회사가 그런 사람을 기대하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또 다르다. 신뢰는 한 쪽이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인데,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먼저 그 신뢰를 느끼도록 해주는 장치다.
  • 조: 조직 문화로 보았을 때 또 신경 써서 만드는 것이 있나?
  • 김: 사실 성장에 노력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다 비슷할 것 같은데, 업무 환경을 잘 갖추려고 노력한다. 월별로 노는 날 만들고… 사실 우리만 특별히 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목요일은 전원 재택 근무로 한다. 그래서 그때만 스크럼 방식으로 나 뭐했다고 슬랙 채널에 올린다. 또 우리는 업계 평균 이상으로 보상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참 로켓펀치는 100% 원격이라고 들었는데, 왜 그렇게 하나?
  • 조: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리 고객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앞으로 바뀐 업무 환경에서 사람들이 일하게 될 것 같고, 그걸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 김: 그런가? 그런데 나는 사무실이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오토매틱 같은 회사는 이미 제품이 완성된 단계이므로, 업무 단위로 쪼개서 일만 하면 되는데, 우리 같은 단계의 회사는 제품 변화가 잦다. 이런 회사들에서 의사 결정이 빨라지려면 어울려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또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 같은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내 동료가 열심히 일하고 잘하고 있으면 ‘나도 같이 잘해야겠다’는 그런 긍정적 압박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만 재택근무를 한다. 구성원이 어떻게 되시나?
  • 조: 14명인데 개발 직군으로 분류되는 사람이 9명 정도다.
  • 김: 우리도 비슷하다. 40명 중에서 약 30명 정도가 개발 직군이다. 그중에서 4명은 머신러닝 엔지니어고 앞서 이야기 했던 개인화 프로젝트 등을 담당한다. A/B 테스트는 파이어 베이스로 돌리는데 편하게 잘 되더라. 머신러닝 팀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자율적으로 많이 한다. 지표 변화가 있으면 왜 있을지 등을 계속 측정하는 등. 앞서 보여준 관리자 페이지도 그런 맥락에서 만든 것이다. 어떤 데이터에 대해서 기획자가 개발자에게 요청해서 확인하면 그건 둘 밖에 모르는 정보다. 하지만 관리자 페이지에 그 정보가 있으면 모두가 볼 수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함께보기

검도와 사업 – 4단 승단에 부쳐

검도는 재미있는 투기(鬪技)다. 우선 체급이 없다. 키나 몸무게를 구분하지 않고 기술을 겨룬다. 또 제대로만 수련하고 있다면, 오랫동안 수련할수록 점점 더 빛을 발하게 된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강한 젊은 검도인들이 나이 지긋한 선생님들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검도가 사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늘 하였다. 회사도 서로 경쟁하는 것에 있어서 체급을 구분하지 않고, 한 분야에 오랫동안 잘 집중한 회사는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된다.

검도에 중요한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 역시 사업을 잘하는 방법과도 일맥상통한다.

一眼, 二足, 三膽, 四力 (일안, 이족, 삼담, 사력)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잘 보고 기회를 포착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 사업에서도 시장의 기회를 잘 포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발이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면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사업에서도 속도가 중요하다. 자주 이야기되는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린 스타트업‘ 같은 개념 모두 속도를 어떻게 높일지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은 세 번째다. 마음이 약하면 스스로 무너져 패배한다. 사업을 할 때도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그 팀은 스스로 무너져 실패한다.

마지막이 비로소 힘이다. 강한 힘이 있으면 좋겠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큰 조직과 많은 자본을 가진 회사들이, 기회를 잘 포착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작지만 단단한 회사에 무너지는 것을 수없이 보았고, 앞으로도 보게 될 것이다.

 

2002년 검도를 제대로 시작한지 14년 만에 비로소 남을 가르칠 자격이 있다는 4단이 되었고, 2013년 시작된 로켓펀치는 4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진정한 깨달음은 삶에서 우러나는 것인데, 나는 기회를 잘 포착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단단한 회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2016년 봄, 서울대학교 검도부 홈커밍데이>

새 시대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하여

언젠가부터 좋은 직업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이 반드시 언급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과중한 업무 경향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경제 성장의 둔화로 일을 통해 기대되는 보상의 수준까지 정체되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보통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하고, ‘일’을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한정하기 때문이다. 정말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에 우리 삶에서 최소화 되거나 적어도 철저히 구분 되어야 하는 개념인가?

중세와 근대 과학이 발전하던 시기, 위대한 성과를 거둔 과학자들 중 상당수는 평생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귀족인 경우가 많았다.

“근대 과학혁명 초기에만 해도 소수의 대학교수들을 빼면, 많은 과학자들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 부자나 귀족 출신이었다. 만유인력 상수를 측정한 캐번디시(Henry Cavendish; 1731-1810), 근대 화학의 아버지 라부와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 1743-1794),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남긴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 프로보다 위대했던 아마추어들

만약 ‘일’을 생계 수단으로 한정한다면, 이 귀족 출신 과학자들이 평생을 걸쳐 이룩한 위대한 성과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평생 일할 필요가 없는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일한 것’만 봐도 ‘일’이 인간에게 돈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 음악을 만드는 일, 글을 쓰는 일 등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예술가로 부른다. 어떤 예술가가 비 오는 날 차를 한잔 마시면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고 가정해 보자. 분명 이 순간의 감성들은 이 사람의 작품 세계에 어떤 형태로건 반영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 지금 이 예술가는 일을 하지 않는 상황 즉, 놀고 있는 상황인가 아니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인가? 예술가의 ‘일’을 캔버스에 직접 물감을 입히고 있는 상황,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고 있는 상황, 종이에 글을 쓰고 있는 상황으로만 한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일에 어떤 수준으로 건 창의성을 발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일과 일 아닌 상태 구분의 모호함’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인간에게 일은 단순히 돈 버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좋아하는, 자아실현이 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면 ‘내가 하는 일이 내 삶이고 내가 사는 삶이 내 일’이 된다. 진짜 ‘일과 삶의 균형’은 이런 관점에서 탄생한다. 열심히 일한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기 때문이며,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이나 여행 같은 다양한 삶의 경험을 누려야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일의 수준을 한층 더 높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로켓펀치가 완전한 원격근무로 일하면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구성원들이 일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켓펀치는 사무실도 없고, 정기적인 오프라인 회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업무를 위해 온라인 상태여야 한다는 규칙도 없다. 이를 접한 많은 분들이 나에게 ‘구성원들이 일을 안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지 않은가?’라고 물어보곤 한다. 하지는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본인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일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일과 삶의 진짜 균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위치나 시간으로 강제 받지 않아도 알아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라. 그러면 평생 하루도 일할 필요가 없다.”
– 로켓펀치 기업 문화를 정리한 문서 가장 첫 장에 있는 문장

우리가 만드는 로켓펀치가 각 개인이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것에, 그리고 새 시대의 일과 삶의 균형을 확립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아주 가끔 있는 로켓펀치 오프라인 회의 모습]

#원격근무 회사의 현실적인 오프라인 미팅 모습 (어수선…)

A post shared by Minhee Cho (@ingray) on

붙임 1. 이 글은 일과 삶의 진짜 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과한 업무와 박한 보상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읽히거나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붙임 2. 글을 쓰던 중에 나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영문 에세이(Work/Life balance is bullshit.)를 찾았다.


이 글은 로켓펀치 블로그에도 함께 실린 글입니다. (‘새 시대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하여)

(농담) 사업 시작 전, 후 생각의 변화

  • 사업 시작 전 : 내가 하려는 분야에서 먼저 일을 하고 있는 경쟁자들이 다 병신으로 보임.
  • 사업 시작 후 : 사실은 내가 병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음. 하루하루 좀 더 ‘덜 병신’이 되기 위해 노력함.

농담 같은 현실